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테니스의 왕자 (문단 편집) == 인기 == [include(틀:2021년 일본 만화 총선거)] 1999년 ~ 2003년에는 [[원피스(만화)|원피스]]와 [[헌터×헌터]]의 쌍두마차 밑에 테니스의 왕자, [[나루토]], [[샤먼킹]], [[유희왕]], [[히카루의 바둑|고스트 바둑왕]]의 '''2강 5중 체제'''라 불렸다.[* [[출동! 세기말 리더 다케시]]는 저 5작품이랑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일본에서도 발행부수나 인기순위가 좀 딸렸던 편. 이후 2000년대 중반부터는 헌터X헌터의 비정기연재화, 샤먼킹, 유희왕, 고스트 바둑왕의 연재종료 및 테니프리의 인기하락, 나루토, 블리치의 떡상으로 우리가 익히 아는 [[원나블]]체제로 들어서게 된다.] 이 시기에 [[단행본]] 발행부수도 밀리언을 찍었다. 대체로 단행본 관동대회 시점인 17~19권 부분 즈음이 [[리즈시절]]. 앙케이트와 발행부수 모두 가장 높았던 시점이다. 후술하였지만 일본의 현실 테니스계에도 큰 영향을 끼칠 정도로 인기나 대중성이 쏠쏠했던 작품이다. 일본에서도 그렇게까지 메이저하지 않은 테니스를 소재로 많은 인기를 얻었고 그 이후의 스포츠 만화에도 영향을 많이 미쳤다. [[OVA]]도 권당 1만권이 넘는 좋은 판매고를 올렸고 [[드라마 CD]]나 뮤지컬도 대성황, 오히려 만화 수입은 그 일부고 뮤지컬의 수입이 더 큰 상황까지 간 작품. 그렇다고 만화 수입이 적은 것도 아니다. 작가 코노미 타케시의 개인 납세액은 테니프리의 전성기가 끝나고도 한동안 상위권에 랭크되었으며, 2015년 11월 말에는 누계 발행부수 약 5700만 부를 돌파했다.[[http://enterstage.jp/news/2015/11/003889.html|뮤지컬 테니프리 소식에 포함]] 2022년 4월 기준 누계 6천만 부를 기록하고 있으며, 여전히 TOP 50 안에 굳건히 자리매김 하고 있다. [[https://www.mangazenkan.com/r/rekidai/total/|만화젠칸 누적 부수 랭킹]] 동인에서의 인기가 엄청나며, '''[[코믹 마켓|코미케]] [[여성향]] 장르 중 2천 부스'''가 넘는 개수로 역대 2위로 랭크되었으며, '''테니스의 왕자 이후 아직까지도 2천 부스를 달성한 작품은 없다.'''[* 참고로 테니스의 왕자 이후 대통합장르라고 불렸던 가정교사 히트맨 리본도 1200부스였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매번 코미케 여성향 장르 10위권 안에 랭크되는 등 여러모로 대단한 작품. 캐릭터송도 잘 팔려서 지금도 캐릭터 송은 꾸준히 발매하고 있다. 참고로 캐릭터송 개수가 300개를 돌파한 지 옛날. ~~테니스 치는 애들이 [[노래의 왕자님|노래하는 애들]]보다 더 발매곡 수가 많다~~[* 실제 [[우타프리]] 레귤러 성우진도 테니프리 출신 성우가 많아서, 스와베 준이치, 토리우미 코스케, 모리쿠보 쇼타로 같은 성우들이 테니프리 유닛으로 함께 곡을 부른 경우도 꽤 된다. [[진구지 렌]]의 성우 [[스와베 준이치]]도 그 유명한 [[아토베 케이고]] 역할로 인기 성우에 등극했을 정도. 심지어 [[이치노세 토키야]]의 성우 [[미야노 마모루]]의 경우 테니뮤(이시다 테츠), 실사 영화(야나기 렌지), 신테니 애니(에치젠 료가) 성우 출연까지 테니프리 3관왕을 찍었다!] 현재는 800곡을 넘었다. 상업적 성과도 대단한데, 1999년에 지금까지 연재되고 여러 미디어믹스가 상업적으로 히트했다. 그리고 '''2000년대 일본 [[테니스]]계를 이끈 원동력.''' 2014년 NHK [[http://waterlotus.egloos.com/3492304|다큐멘터리]]를 보면 실제로 이 만화가 나온 2000년도를 기점으로 [[시망]]에 가까웠던 일본 남성 테니스 인구가 대폭 상승하고, [[와세다대학]] 테니스부에서는 30명중에 21명이 이 만화를 알고 있고, 이때문에 실제로 테니스를 치게 되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에서 일본 테니스 협회 회장이 직접 '만화가 일본을 움직였다'고 평했다. 그러나 여성 테니스 인구는 그다지 차이가 없다고 한다. 세계구급 일본 프로 테니스 선수 [[니시코리 케이]](2015년 8월 기준 세계랭킹 5위)는 "테니스의 왕자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목표로 삼고, 실제로 료마가 쓰는 한 발 스플릿 스탭도 구사한다. 작가 코노미 타케시는 테니스 잡지에서 중국계 미국인이자 남자테니스 유일한 아시아계 그랜드슬램 우승자(1989년 프랑스오픈)인 [[마이클 창]]이 한 발 스플릿 스텝을 쓴다는걸 알게 되고 이 기술을 료마의 기술로 넣었는데, 이후 2014년 1월 마이클 창은 니시코리 케이의 코치가 되었으며 창의 지도를 받아 니시코리는 세계구급 선수로 성장했다. 한편 니시코리 케이의 첫 스승이자 일본 테니스계의 대표적 원로인 [[마츠오카 슈조]]는 [[에이스를 노려라]]를 인생의 저서로 삼고, 만화 속 대사에 밑줄을 그어가며 실제 자신의 인생의 지침으로 썼다. 실제 윔블던 경기에서 "이 1구는 절대무이의 1구가 되리 (この一球は絶対無二の一球なり)"라는 말을 크게 외쳤다는 일화는 유명. --그리고 마츠오카 슈조는 실제로 리얼 테니스의 왕자 기술을 보여준다-- 2014년 기준 16세인 일본 테니스의 유망주 도쿠다 렌타는 5세때 테니스의 왕자 애니메이션을 보고 료마와 같은 붉은 라켓을 사달라고 해서 테니스를 시작했다. 11세 때 위의 [[마츠오카 슈조]] 쥬니어 육성캠프에도 참가하여 점점 두각을 드러내고, 14세 때 일본 주니어 대표가 되었다. 이후 중학교를 졸업하고, 테니스의 명문고인 쇼난 공과대학 부속고[* 이 학교는 릿카이 부속중의 모델이 된 학교다. 실제로 2008년 전국제패 2연패.]에 재학하며 고1이 되자마자 고교 주니어 챔피언이 되었다. 인터뷰에서 도쿠다 렌타는 "기적이다. 내 인생을 만들어 준 만화. 테니스의 왕자님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 여기에도 없고, 히로시마에서 평범한 고교생으로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고 말할 정도로 인생의 지표를 열어주었다고 한다.[* 단, 작품과 달리 현재 테니스계는 학원 체육이 대세가 아니다. 고교 주니어 챔피언이라고 해서 대단해보이지만 더 대단한 선수는 세계 주니어 무대에 도전하지 국내 대회에 연연하지 않는데, 실제로 도쿠다 렌타는 주니어 세계대회나 퓨처스 무대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덕희, 정윤성과 동갑이지만 세계랭킹은 조금 처져있었는데 2018년에 스텝업을 하면서 top300에 진입하는 모습. 230위, 270위권에 위치해있는 이덕희 권순우와 큰 차이가 없는 랭킹이다. 본작도 중학생만 중학교 대회에 연연하지 프로를 지망하는 고등학생을 다루는 신 테니스의 왕자에서는 세계대회가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